이직하기 전 직장에서 극심한 스트레스를 겪던 나는 정신적 어려움이 신체적 어려움으로 번지는 경험을 한 적이 있었다. 인간의 외부 환경에 대한 예민함이 높아지면 신체적으로 그 예민함이 표출되는 경우가 있다고 하는데, 나의 경우에는 목과 발에 그 긴장감이 표현되어서 직장생활이 힘들었던 날들과 일을 잠깐 쉬던 기간, 이직 후 새로운 직장에 적응하는 기간들을 포함하여 거의 3~4년간은 이런 증상으로 힘들어했다. 발로 표현되던 예민함은 발가락이 아무 이유 없이 오그라들고, 멀쩡하게 신고 있던 신발이 옥죄어오는 느낌이 나며, 발에 땀이 많이 나고, 양말이 끝없이 내 발을 누르는 기분이 드는 것이었는데 그때문에 대학생활을 할 때 까지는 예쁜 신발을 신는걸 나름대로 즐기던 나도 어느 순간부터는 예쁜 신발은 안중에도 없이 발이 편한 신발만 찾아 신곤 했었다.
그러다 작년 연말에 유럽 여행을 가기 위해 오니츠카타이거를 한 켤레 사면서, 문득 '아 내가 더이상 발이 편한 신발에 집착하지 않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새 '발이 편함' 이라는 지표가 다시 우선순위의 뒷켠으로 밀려나는 것이 내가 잘 이겨내고 행복한 인생을 살고있다는 증거인것처럼 느껴져서, 언젠가 좋은 일이 있다면 상징적으로 마음에 드는 새 신발을 사 신어야지 하고 다짐했었다.
새 직장으로 옮긴지도 어느새 2년이 넘었다. 직장생활이 늘 그렇듯이 좋은일도 있고 나쁜일도 있었다. 매 순간이 좋았다고 말할 순 없지만 감사하게도 돌이켜보면 나쁜일은 옅은 흔적만을 남긴 채 증발해버리고 좋은 일들이 가득 남아 내 2년을 채워주고 있었다. 그저 개인의 행복에 애사심을 조금 더해서 일상을 보냈을 뿐이었는데, 2년을 다녔다는 이유로 얼마 전 회사에서 감사하게도 회사 주식을 임직원 주식보상으로 나누어주었다. 그래서 그 때 새 신발을 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기분 그대로를 신고 앞으로의 평범한 일상을 보내고싶었다.
난생 처음 나이키 어플을 설치했다. 직접 가서 신어보지도 않고 그저 시각적인 기호만으로 신발 두켤레를 샀다. 오랜 고민을 하지도 않았다. 회원가입부터 결제완료까지, 일사천리로 10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결제를 누르고 가만히 앉아 지나온 직장생활을 돌이켜보니 눈물이 난다기 보단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결제를 하고 신발이 도착할때까지는 이틀이 걸렸다. 수요일에 주문해서 목요일에 도착하고 금요일에 문앞에 도착한 신발을 만날 수 있었다. 사실 두켤레 합해서 25만원 정도 되는 거금이라 너무 충동적으로 산건 아닐까 하는 생각에 몇번이고 무를지 고민을 했었는데 나이키 어플에는 구매 취소 버튼이 없었다. 어떻게 환불하는지도 잘 모르겠고 그렇게 3일이 지나 신발이 도착해버렸다. 그치만 신발 상자를 열어보니 고민되었던 마음이 조금 너그러워졌다. 그래 나도 예쁜 신발 신을거야.
신발 리뷰를 하기 전에 서론이 너무 길었는데.. 신발에 대해 이야기 해보자면 올 겨울에는 전반적으로 스웨이드 재질의 신발들이 유행을 타는 것 같다. 단순히 색감이 예뻐서 고른 신발이었는데 도착한 신발을 자세히 보고있자니 가죽과 스웨이드 그리고 천 재질이 적절하게 믹스되어있는 것이 더더욱 마음에 들었다. 개인적으로 쨍하고 청량감 있는 보라색을 좋아하는데, 중간중간에 들어있는 위트있는 보라색이 신발에 생동감을 더한다. 얼마 전 PPG에서 발표한 올해의 컬러 '퍼플 바질'에 비해 채도가 좀 높긴 하지만, 비슷한 결이 느껴지는 것도 씨티 콘크리트를 사길 잘 했다고 생각하는 데에 한번 더 근거를 더해주었다.
작년부터 이런 플랫한 계열의 신발들(말하자면 투박이와 날씬이 중에 날씬이 계열의 신발)이 유행을 하면서 이런저런 날씬이들을 신어보았는데 쿠션감과 착화감으로는 다른 신발에 비해 압도적으로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신발들은 지면에 달라붙는 느낌이라면, 이 신발은 밑창이 있는 것 뿐만 아니라 밑창과 내 발 사이에 에어쿠션이 하나 더 있는 느낌. 사이즈는 내 발이 보통 235에서 240 사이에 있기 때문에 240을 주문했는데, 240은 조금 크다는 느낌이 있어서 이 신발을 살 때는 정사이즈 또는 반사이즈 작게 사는 것을 추천한다. 그리고 마이너한 부분이긴 하지만, 날씬이 신발 치고는 축구화처럼 지면에 닿는 부분의 높이가 높게 올라와있었다. 겨울 신발로 날씬이들을 신고있자면 눈길에 미끄러지진 않을까 고민될때도 있었는데, 이 신발은 적어도 그런 고민은 하지 않을 것 같았다.
요약하자면 올해 유행하는 요소(스웨이드, 퍼플, 신발의 납작하고 얇은 셰입)를 몽땅 넣어 트렌디함이 살아있으면서도 어디든 받쳐신기 좋은 무난한 컬러에 훌륭한 착화감까지.. 시티 콘크리트를 추천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대만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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